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스쿠니 신사/사건사고 (문단 편집) == 야스쿠니 신사 방화사건 == 2011년 12월 26일 새벽에 [[http://www.yonhapnews.co.kr/international/2011/12/26/0602000000AKR20111226093400073.HTML|누군가가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질렀다.]] 경비원이 재빨리 발견했기에 신사 안의 산문기둥이 그을린 정도로 끝났다. 2012년 1월 8일 [[주한일본대사관]]에 화염병을 던진 [[중국인]] 리우 치앙이 검거되었다. 그는 자신의 외할머니가 [[일본]] 때문에 피해를 입은 [[한국인]] [[일본군 위안부]]였으며, [[노다 요시히코]] 일본 총리가 [[일본군 위안부]] 문제에 대한 합의를 거부하는 것을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한다. 또한 그는 자신이 [[http://kr.news.yahoo.com/service/news/shellview.htm?articleid=2012010817510725014&linkid=4&newssetid=1352|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질렀다]]고 주장했다. 이 [[중국인]]은 재판을 받고, 징역 10개월을 살게 되었다. 2013년 1월 3일, [[야스쿠니 신사]] 방화범 리우 치앙을 [[http://www.yonhapnews.co.kr/politics/2013/01/03/0503000000AKR20130103205500043.HTML?template=2085|중국으로 송환하기로 했다.]] 한일 범죄인 인도조약 3조 '절대적 인도거절' 항목에 따르면, [[http://www.yonhapnews.co.kr/politics/2013/01/03/0503000000AKR20130103191400004.HTML?template=2085|"정치적 범죄이거나 정치범으로 판단될 경우 범죄인 인도를 허용하지 않는다"]]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. 법원은 야스쿠니 신사를 불태우는 것이 정치적 범죄라고 판단한 것이다. 리우 치앙은 이미 징역 10월을 복역했지만 일본이 자국내 범죄를 이유로 신병인도를 요구해와서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았으며, 이 결정에 [[http://www.yonhapnews.co.kr/international/2013/01/03/0602000000AKR20130103213151009.HTML?template=2085|중국은 환영했고 일본은 유감을 표했다.]]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어쨌든 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진 것에 대해 [[한국]] 측에서 처벌하여 [[일본]] 측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했고, 또한 류창에 대한 [[일본]]의 인도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[[중국]] 측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, 그 외에도 한국이 [[일본]]에 가진 유감을 인도 거부라는 형태로 표현했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, 나름대로 중립적인 위치에서 대처를 잘 했다는 평이 많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